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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에 대한 가르침
 청명  | 2015·12·07 13:11 | HIT : 917 | VOTE : 242

       모든 중생들에게 한없이 오랜 과거로부터 나고
           죽음이 계속되는 것은 항상 머무르는
        참마음의 맑고 밝은 본체를 알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이 작용하는 탓이니  
           이 허망한 생각은 참되지 못하므로
           나고 죽는 세계를 윤회하는 것이다.          

                   출처 : <능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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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죽으면 그저 육체를 떠날 뿐이다. 곧 다른 육체 속으로
들어간다. 다른 육체로 옮겨가는 데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는다. 다른 육체로 옮겨 가도 '나'는, '나의 마음'은 그대로 남는
다. 마음도 에고도 그대로 남는다. 오직 흙으로 된 단지만이 부서
질 뿐이다.

붓다는 끊임없이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라.
그러면 사바(娑婆)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어떠한 욕망에도 신경쓰지 말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라.
그러면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수없는 윤회를 되풀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윤회의 거미줄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과연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출처 : <오쇼 라즈니쉬 강의록>


오온(五蘊)을 상주 불변하는 본질적 자기로서의
자아(自我)라고 집착하는 '나'는 당연히 오온에 따라
윤회하지만[무아윤회無我輪廻],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즉 범부가 집착하는 자아가
가아假我임을 파악한 각성[無生法忍]에 도달하면
윤회하는 일이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즉 윤회와 해탈의 갈림길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자아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자아의 실상에 대한 인식입니다.

간략히 말하면 자아를 윤회의 주체로 집착하면 당연히
윤회하지만, 그러한 주체가 부정되면(無我) 윤회할
근거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세계 속의 영혼, 해탈한 자의 존속 문제 등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부처님은 이를 인간의 지각능력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라 하여 답하지 않으셨습니다.[無記]

단, 화엄경 십지품에 보면 보살의 지혜의 자리가
제9지인 선혜지善慧地에 이르면 체득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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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결코 다함이 없는 영원한 흐름이라는 것을
그대는 모른다. 죽음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무지(無知)와 무명(無明)만 있을 뿐이다.

아무 것도 파괴되지 않고
아무 것도 창조되지 않는다.
그저 뭉쳤다가 흩어질 뿐이다.
뭉치는 것이 삶이요, 흩어지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이 수없이 그대를 찾아왔어도 죽음은 그대를 파괴하지 못했다.
그대는 있는 그대로(如如)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겉보기에 죽음과 소멸처럼 보이는 것은
순전히 그대의 무명(無明) 때문이다.

'살아서 죽어라'
일어나는 모든 것은 꿈이다.[諸行無常, 諸法無我]
'죽기 전에 죽는 것[自我의 소멸]' 이것이 제대로 사는 법이며,
만물이 태어나기 전의 한 가지[眞理:佛性]로 들어가는 길이다.

             [오쇼 라즈니쉬 강의록]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태어나고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사라진다.
        불자가 그 이치를 따라 실행하면
        오는 세상에는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라.

   불교의 본질적 핵심은 연기법(緣起法)입니다.
   시작과 끝, 태어남과 죽음이 모두 연기의 상태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입니다.
   연기적으로 보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총체적인 존재
   아님이 없습니다.
   생성과 소멸, 소멸과 생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불일불이의 관계입니다.

죽음의 실상을 여실如實이 통찰하면 끊임없는 생명활동
이 있을 뿐 종말로서의 죽음이란 본래 있지 않습니다.
죽음이란 인연 따라 이루어지는 생명의 활동현상이므로
회피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생명활동의 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새로운
태어남과 성장의 계기가 되도록 잘 가꾸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도법스님 강의록]


  진리(無我緣起)는 변함이 없지만, 현상계는 변합니다.
  우주 안에서 에너지 질량불변의 법칙(不增不減)으로
  늘어남도 줄어듦도 없습니다.

누가 죽어도 죽은 게 아닙니다.
그럼 죽은 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는가?
죽은 게 아니고 변화한 건데 말이다.
왜 이런 인식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이 개체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
즉 주체적 실존인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나라고 하는 것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변화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삶에 집착하는 이유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
입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 죽음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하나로 보는 사람은 하나하나의
개체를 나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수히 교체
되고 계속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즉, 전체 덩어리가 계속
모양을 바꿔가며 변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자유로의 길/무위 해공]

  
  연기(緣起)에 대한 가르침  청명 15·09·25 925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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